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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속에다가 그것도 기분마저 몹시 가라앉은 상태에서 순식간

에 소주 한 병을 마시자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태윤은 담배를 한대 천천히 피우고는 오뎅 국물을 한 번 더 마

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피스텔로 들어서자 준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 역시 충격이 컸던지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태윤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태윤은 술이 좀 오른데다가 준호의 얼굴을 보자, 또다시 조금 

전의 게임 상황이 떠오르며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날의 게임은 준호가 빌미를 제공하긴 했어도 게임 

후반에는 태윤 스스로가 무너진 것 이었기에 무작정 준호를 탓

할 상황은 아니었다.

“준호야 오늘은 너무 뚜껑이 열리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했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얘기하자.”

태윤은 지금 상태에서 준호와 게임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자칫 감정을 자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실

제로도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준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태윤은 화장실로 들

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준호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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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면 안되는거 알지만 오늘은 정말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러니 이해 좀 해주라 ”

태윤은 억지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며 오히려 준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한편 태 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준호의 마음은 찢어 질 

듯 괴로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

이 굴뚝 같았다. 

몇 번이나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차마 태윤 앞에서 

그 말을 꺼낼 자신이 없었다.

최중사와 얘기를 시작할 때 태윤과 준호가 잃은 돈의 반을 받기

로 했기에 이날까지 최중사에게 받은 돈이 상당한 금액이 되었지

만준호는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준호는 이번 일을 벌이면서 태윤이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이 벌였던 행동에 대해 뒤늦게 뼈저린 후회를 하

고 있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참담한 기 으로 태윤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던 준호는 여기서 

이 일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이때는 준호가 태윤을 배

신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던 실력의 차이, 힘의 균형, 자존

심, 정은과의 문제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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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리 돈이 좋고, 아무리 정은을 좋아하고, 또 정은

에 대한 서운함이 커도 더 이상은 태윤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태윤이 가지고 있던 자신감마저 상실하고, 

심각한 상황까지 발생할지도 보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준호는 최중사를 만나 자신의 뜻을 전했다.

”뭐야? 여기서 끝내자구?”

준호의 얘기를 듣고 난 최중사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반문했다.

“예, 더 이상은 못 하겠수.”

“그래?”

“그 정도면 된 거 아닙니까?”

“아니, 태윤이가 얼마를 빠트렸다고 벌써 이러는 거야?”

지금까지 태윤이와 준호가 함께 잃은 돈이 적은 금액이 결코 

아니었는데도 최중사는 전혀 양이 차지 않는다는 듯 빈정거렸

다. “얼마를 빠트렸건, 하여간 이제 그만 둡시다.”

“그건 안 되지.”

준호가 계속 그만두겠다고 주장하자 최중사가 쐐기를 박았다.

“뭐요-?”

“넌 혼자서 먹었으니까 소화가 잘 됐겠지만, 난 그렇지가 않거

든. 태윤이 같은 자식을 잡으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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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원한 애들만 몇 명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면 곤란하지.”

“더구나 태윤이가 눈치를 긁든 말든 무조건 골통을 까려 했다

면 싸구려 애들을 써도 됐지만, 그건 네 입장을 봐서 그렇게 

안한 거야. 

“쌍둥이나 C, D 같은 애들은 단가가 싼 애들이 아니거든.”

최중사는 준호의 입장을 배려 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였다.

“그런 건 내가 알바 아니고, 아무튼 난 안 합니다.”

최중사는 물러서지 않고 있었지만 준호는 단호하게 짤랐다.

“그렇게는 안 돼-!”

“뭐가 안 됩니까? 내가 안 하겠다는데….”

“넌 챙길 만큼 챙겼으니까 이제 손을 떼겠다…?”

“함께 잡아먹자고 할 땐 언제고, 배에 기름이 좀 끼니까 이제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겠다는 거야?”

“넌 태윤이도 배신하고 또 우리까지 배신해서 네 배만 채우겠

다는 거냐? 

“그렇게 안 봤는데 김준호도 양아친가 보군.”

최중사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준호의 심정을 건

드렸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

니었다.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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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최중사의 반격에 충격을 받은 듯 준호의 언

성이 높아졌다.

“왜? 내 말이 틀려?”

”정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한테도 생각이 있어.”

“지금 끝낸다면 나로서는 여태까지 신경 쓰며 공들여온 게 

너무 아깝거든.”

”그럼 대체 어떻게 하잔 얘기요?”

“다음번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크게 수술을 하고 끝내는 

걸로 하지?”

쌍둥이 형제, C, D와의 2차전은 바로 다음날 열리게 되었다.

태윤의 입장에서는 참패의 충격01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지

만, 그만큼 냉정을 잃고 있었고 쌍둥이 형제에게 적의를 가지

고 있었던 것이다. 

태윤과 준호는 서로에게 지금까지의 게임은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라고 다짐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날의 게임은 모두가 합의하에 지난번 게임보다 약 3배 가까

이 판을 키운 큰 승부였다. 

이것은 최중사가 준호에게 요구한 것 이기도 했지만, 태윤 역

시 조급해져 있었기에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 것

이다. 

게임은 이번에도 로우바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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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크기가 워낙 컸고 초반이었기에 모두들 타이트한 운영

을 하고 있었지만 매 판 적지 않은 돈이 왔다 갔다 하며 분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태윤은 초반 몇 판에서 잠시 주춤거렸으나 마경식의 공갈을 

멋지게 잡아내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고 있었으며 준호 역시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면서 판이 서서히 무르익어갔는데 초반이 지나가면서 쌍둥

이 형제가 판을 흔들어 대며 기선을 제압하려 하였다.

어떤 종류의 포커 게임에서든.누가 베팅의 주도권을 가지고 

게임을 이끌어 가느냐?”가 승패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포커 게임의 고수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게임의 분위기

를 자신이 이끌어,베팅 기술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븐오디 게임보다 로우바둑이 게임에서 베팅은 승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로우바둑이 게임에 있어서 베팅에 밀리고 끌려 다니는 게임

을 하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쌍둥이 형제가 판을 흔들고, 태윤과 준호 역시 물러서지 않

으면서 조금씩 더 승부가 거칠어져 갔다.

그러면서 태윤과 준호는 큰 승부 없이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

었는데, C와D가 계속 쌍둥이 형제에게 무너지며 쌍둥이 형제

가 먼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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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형제가 앞으로 나서면서 지금껏 조용하게 이어져오던

게임 판의 분위기가 조금씩 소란스러워 졌다. 

쌍둥이 형제가 떠벌 떠벌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는 판데기가 쭈글쭈글해서 영 맛이 없더니만, 수심 들이 

깊어지니 이제 베팅발이 좀 먹히는군.”

마경식이 혼자말로 하는 소리였지만 분명 상대를 얕잡아보며

신경을 건드리는 말투였고, 지금의 상황에서 그 상대는 태윤

뿐 이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이 정도의 신경전에 걸려들 태윤은 아니었

다. 하지만 지금은 억지로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상태였

기에,누군가가 조금만 신경을 건드려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였다. 

마경식의 이 말이 안 그래도 열이 올라있는 태윤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 자식이 아주 꿈속에서 노는구만”

태윤은 자신을 저 아래 하수 취급하는 듯한 마경식의 말투에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찬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쌍둥이 형제가 의식적으로 판을 흔들며 중반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판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준호가 C에게, 그

리고 태윤이 손일수에게 각각 한방씩 얻어맞으며 주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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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서서히 태윤의 스텝이 다시 꼬여가고 있었는데 이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반 이후로는 판 같은 판이라고는 거의 입질을 못한 채 몇 

판 걸러 한 판씩 쌍둥이 형제,C에게 돌아가며 카운터펀치를 

맞으면서 태윤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준호 역시 태윤보다는 덜했지만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두 사람의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태윤은 점차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패가 꼬이고 또 사대가 안 맞는다고 하더라도 지난 3차

례의 게임부터 이날의 게임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도저히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태윤과 준호의 실력이 애당초 쌍둥이 형제와 C, D에

게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라는 결론이지만, 그건 인정할 수 

없었다.

태윤의 바둑이 게임 실력은 대한민국 라인계의 거물들이 인정

하는 수준이었고 태윤 스스로도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

기에, 실력 차이로 인해 이리도 일방적으로 무너진다고는 도저

히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포커 게임이란 세계 최고의 고수라 하더라도 이길 수도 있고, 

질수도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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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무리 초일류 고수라도 한동안 계속 내리막을 타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태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패배를 하더라도 자신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상황이

되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고수들일수록 자신의 

패인을 정확히 감지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법이다. 

태윤도 그 정도의 수준에는 이미 올라 있었다.

하지만 벌써 네 번이나 연달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

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

가?태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상에 갈피를 못 잡고 우왕

좌왕 하며 흔들렸다. 

그러면서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고 태윤과 준호의 피해액

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이제 3~40분이나 남았을까? 

게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이때 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미 태윤은 거의 전의를 잃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마지막 안

간힘을 쓰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태윤에게 처음 들어온 패는 ♧5-◇8-:♡10-◇j였다.

마경식이 딜이었고 첫 번째 베팅 위치인 준호가 먼저 베팅을 

하고 나왔다.

 C와 손일수가 콜을 하였고, D가 레이즈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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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순서였던 태윤은 나름대로의 작전을 세우고 2단 레

이즈를 하였다. 

마경식과 준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콜을 했고, C는 패를 꺾

었으며 손일수와 D 역시 콜이었다.

그러고 나서 첫 번째 커트에 들어갔는데, 태윤의 운영은 ♣5

1장만을 가지고 나머지 3장을 바꾸든지, 아니면 아예 ♣도 버

리고 4장을 모두 바꾸는 것이 일반적 인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태윤은 베팅 위치가 좋았기에 ◆J 1장만을 바꾸기로 했

다. 즉, 첫 번째 커트에 운 좋게 메이드가 되면 그걸로 승부

를 걸고, 만약 첫 번째 커트에 메이드가 안 되더라도 바로 스

테이를 하고 공갈을 시도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다시 말해 태윤은 첫 번째 커트가 끝난 후 메이드가 되든 안 

되든 무조건 스테이를 하고 승부를 걸기로 한 것이다.

첫 번째 커트에서 준호와 손일수는 2장을, D와 태윤, 마경식은

모두 1장을 바꾸었다 태윤은 1장을 바꾸고 자신에게 들어온 

카드를 쪼아보았지만 ◆9가 오며 메이드가 되질 않았다. 

이왕이면 메이드가 되었으면 좋았지만, 어차피 이미 작전은 

서 있는 상태였기에 태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선두인 준호가 체크를 하고 나오자 손일수와 D 역시 체크로 응

수했다. 태윤은 베팅을 하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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