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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이번 블랙잭 대회에서 콜라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무대에 올랐고 스타가 돼버린 거였다.

그 후유증이 슬슬 찾아오기 시작했다.

카지노 테이블에서 아는 척하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졌다.

원래 블랙잭 말구의 터프가이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아이돌 가수 급으로 팬들이 몰고 다녔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천둥은 카지노 야외주차장을 가로질러 사북읍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희망밴드로부터 연락이 와 연습장으로 가는 참이었다.

폐광으로 흉물스럽게 남은 동원탄좌 자리 아래 있는 석탄회관.

행사가 없는 평일에 희망밴드는 석탄회관에서 연주 연습을 했다.

천둥이 회관에 도착했을 때 밴드는 나 어떡해를 연주 중이었다.

천둥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출입문 밖에서 지쳐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밴드는 실제공연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대기실에서 장발의 사내가 걸어 나와 보컬들의 코러스를 지적했다.

장발을 본 천둥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천둥이 들어 외라!”

장발은 출입구 쪽을 보지도 않고 크게 천둥을 불렀다.

장발장, 네가 불렀구나!”

천둥이 무대 쪽으로 걸어왔다.

장발장이 무대에서 훌쩍 뛰어내려 천둥과 팔을 맞대는 로커들의 악수를 청했다.

둘이 포옹을 하자 무대 위의 밴드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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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 언더그라운드 최고의 로커였다.

록의 대부 신중현의 계보를 잇는 실력파로 한때 반짝 전성기를 누렸으나

대마초 흡연사건으로 공식적인 무대를 떠난 야인이었다.

그러나 작곡과 기타 연주가 뛰어나 많은 후배들이 따랐고,

그의 음약을 사랑하는 마니아층이 두터워 재야의 와호장룡(歐虎藏龍)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음악계의 거인과 천둥이 반말로 인사하는 사이라는 게 놀라웠다.

네가 어떻게 이 강원도 오지까지 왔냐?”

천둥이 묻자 장발장이 밴드를 가리켰다.

일주일에 한 번 희망밴드 연주지도를 위해 여기 온다. 나야 그렇지만 천둥이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네가 부른 데스페라도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잖아.”

동영상을 봤다고?”

, 우리 희망밴드는 공연할 때마다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나한테 보내는데

 거기에 네가 들어 있더라고 천하의 천둥이 어째서 이 강원도 오지에 숨어 있냐고?”

장발장이 희망밴드 멤버들에게 천둥을 소개했다.

이미 알겠지만 제대로 다시 소개할게요. 여기 천둥은 저와 음악을 같이 했던 친구입니다.

 저는 기타연주, 이 친구는 보컬로 환상의 콤비였지요.”

! 어쩐지! 제가 여태 본 가수들 중에 최고였습니다.”

희망밴드 리더가 경탄을 터뜨렸다.

장발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천둥의 어깨에 팔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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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나섰으면 서태지와 쌍벽을 이뤘을 겁니다. 장르가 달랐지만.”

천둥이 장발장의 입을 막고 밖으로 이끌었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 하고 나가자.”

장발장은 밴드 멤버들에게 나 어떡해를 다섯 번 더 연주하라 지시하고 따라 나왔다.

꽁지머리 천둥과 허리까지 치렁치렁 흑발을 늘어뜨린

장발장이 나란히 서니 록 그룹 냄새가 강렬하게 풍겼다.

석탄회관을 나오니 세찬 바람이 불었다.

장발장의 머리카락이 산발로 나부꼈다.

무협영화의 등장인물처럼 그 머리카락 틈새로 안광(眼光)이 번뜩였다.

이 자식, 미국에서도 걸핏하면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틱시티 카지노를 들락거리더니

 아직도 그 바닥을 못 벗어났나 보네?”

장발장이 담배를 권했다.

너는 대마초, 나는 카지노 어울리는 조합이잖아?

 로커들은 속세의 도덕률에 얽매이면 안 되지. 제멋대로 살아야 우리다운 거야.”

후후, 여전하구나! 밥은 안 굶고 사냐?”

세상 최고의 요리사와 함께 살고 있어. 얼굴 보면 모르겠니?”

장발장이 유심히 천둥의 얼굴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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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찰색이 진짜 섭생을 잘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자가 있어?” ]

.”

결혼?”

아니, 합숙.”

으잉? 동거도 아니고 합숙이야?”

이따 소개해줄게. 너도 그녀의 요리를 맛보면 헤어날 수 없을 걸. 여기 살겠다고 사정할지 몰라.”

, 갈수록 오리무중이로구만. 두 시간 후에 서울로 갈 참이었는데 취소하고 하룻밤 너와 지내야겠다.”

좋지. 오랜만에 입이나 맞춰볼까?”

천둥이 회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둘은 다시 들어와 희망밴드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의자에 앉아 듣고 있었다.

드럼이 항상 리듬을 잘 쳐줘야. 해요. 노래를 끌어갈 때 멜로디의 높낮이를 제외하고 수평적 배열은 리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럼이 모든 악기를 이끌고 가죠.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밴드에서는 드러머란 말입니다.

 드럼이 빨라지면 모두 따라 오기 때문에 연주가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구장창 북을 두드리는 필 인은 화려해보이지만 녹음해서 들어보면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해요.

 그래서 드럼이 밸런스를 잘 유지해줘야. 됩니다.”

장발장이 드러머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했다.

그리고 직접 기타를 잡고 천둥을 불렀다.

헤이, 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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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이 무대 위로 올라가 기타를 메고 마이크 앞에 섰다.

장발장이 핑거 주법으로, 천둥은 스트로크 주법으로 화음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룹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희망밴드 멤버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두 사람의 연주를 지켜봤다.

기타연주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내의 모습은 황홀해 보였다.

기나긴 전주가 흐른 뒤 천둥이 노래를 불렀다.

어두운 사막의 고속도로 위에,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를 파고 들며,

대기로부터 전해 오는 따스한 온천 내음.

저 멀리 반짝이는 불을 보자 내 머리는 무겁고 시야가 흐려지고 있어요.

이 밤을 묵기 위하여 멈췄는데,

문 앞에는 웬 여자가 서 있고,

교회 종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이곳이 천국이 아니면 지옥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촛불을 비추며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갔어요.

복도 저 편에서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났지요.

캘리포니아 호텔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정말로 멋있는 곳.

캘리포니아 호텔에는 방이 많고,

일 년 중 언제나 그녀를 볼 수 있지요.

그녀 주위에는 멋진 청년들이 몰려 안마당에서 춤을 추었어요.

나는 지배인을 불러 포도주를 갖다 달라고 하자,

그는 그런 독한 술은 없다고 했어요.

천정에 붙은 거울과,

얼음을 넣은 핑크 샴페인,

주인의 방에서 파티가 벌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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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기억나는 건 내가 돌아가려고 문을 찾았어요.

경비원은 내게 진정하라고 하며,

우리는 당신을 맞을 준비가 되었으니,

원한다면 언제든 계산하고 나가세요.

그러나 당신은 절대로 떠날 수 없어요.

후렴 부분에 장발장의 코러스가 들어왔다.

듀엣의 탁성(獨聲)이 석탄회관을 가득 메웠다.

천둥이 눈짓을 보내자 장발장이 엘렉트릭 기타 속주(速奏)로 멜로디를 뿌려댔다.

둘은 눈을 감고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친구여. 그 때를 기억하는가? 우리들의 찬란했던 나날들을.

당연하지. 달려오는 열차와 부딪혀도 끄덕없을 것 같았던 강철의 청춘을 어찌 잊을까?

그때 우리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꿈을 꾼 적 있었던가? 그저 달리고 싶었을 뿐이지.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을 감으면 선하게 떠오른다.

천둥이 미국 동부의 명문 아이비리그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장발장이 찾아왔다.

20대 중반에 천재 뮤지션으로 히트곡을 쏟아내며 인기가도를 달리다

대마초 흡연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장발장은 폐인의 몰골이었다.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아 공항의 입국게이트를 통과할 때 무진장 애를 먹을 정도였다.

어서 와라. 친구!”

천둥은 장발장에게 팔을 내밀어 십자가로 크로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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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반겨주는 벗이 세상 어느 곳에 한 명은 있으니 내가 헛되이 살진 않았군.”

무슨 소리야. 날 찾아주는 벗이 한 명이라도 있어 내가 고맙지.”

둘은 공항에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날개가 꺾인 천재 뮤지션은 외로웠고,

오랜 유학생활에 지친 천둥도 외로웠다.

둘은 곧바로 미국횡단 음악여행을 떠났다.

뉴욕에서 오래된 컨버터블 중고차를 렌트해 무작정 남부로 출발했다.

여행경비는 길거리 공연으로 충당하면서 기름 값과 숙식비가 마련되면 조금씩 이동했다.

컨트리 음악의 고향 내슈빌, 재즈의 발상지 뉴올리언즈로 가는 여정은 길고도 길었다.

천둥과 장발장 콤비는 여행 초기에 낯설고

물 설은 미국 도시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음악적 열정으로 버렸다.

다행히 그들의 재능과 한국적 감성이 현지인들에게 잘 먹혀들어 경비는 쏠쏠하게 벌었다.

재즈, 컨트리, 블루스, 록큰롤의 음악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담겨있어

고난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인들의 정서와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블루스의 탄생지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의 도시 멤피스에서 천둥과 장발장은 길거리 공연으로 큰돈을 벌었다.

길거리 어느 곳에서라도 깡통 하나 놓고 노래를 하면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너도 나도 달러를 던져주었다.

1백 달러 고액권도 꽤 들어있어 늦은 밤 모텔에서 공연수익을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시 음악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수준이 높아. 우리 여기 정착할까? 이렇게 매일 벌면 부자 되는 거 간단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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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이 손가락에 침을 발라 지폐를 헤아리면서 킬킬거렸다.

한국에서 스타가 됐을 때도 세상 물정은 전혀 몰라 담뱃값 정도나 겨우 아는 친구였다.

이 친구야. 너는 한국 최고의 뮤지션이야.

 올림픽경기장에서 공연 한 번 하면 몇 만 명이 입장할 텐데

 노숙자로 방랑하면서 깡통에 동전 구걸이나 하고 다니면 되겠어?

 버스킹은 어디까지나 여행경비를 위한 공연이다, 명심해.”

방랑 듀엣은 뉴올리안즈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처음 만난 흑인 재즈그룹과도 즉석에서 합동연주를 했고,

모르는 노래도 노래의 코드를 읽어 허밍으로 따라할 줄 알았다.

뉴올리안즈 시민들은 방랑 듀엣이 부르는 한국 노래에 열광했다.

아리랑, 태평가 등의 민요부터 목포의 눈물,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의 트로트를 록 창법으로 부르면 까무러치곤 했다.

미국의 남부도시를 순례하고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콜로라도, 애리조나를 거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수중에 15천 불의 거금이 있었다.

길거리 공연으로 숙식, 여비를 해결하고도 그만큼 돈이 모인 거였다.

미국 횡단여행의 종착지가 바로 라스베이거스였다.

원래 로스앤젤레스까지 계획했으나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라스베이거스는 천둥이 꿈에 그리던 도시였다.

어쩌면 그는 음악의 고향들보다 도박의 도시를 훨씬 갈망했는지도 몰랐다.

, 75백 불씩 나눠서 각자 카지노에 도전하는 거다.”

천둥이 돈을 나누자 장발장은 고개를 저었다.

난 게임할 줄 몰라. 네가 전부 관리해. 나는 따라만 다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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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은 장발장을 데리고 게임을 시작했다.

수백억 원의 상금이 걸린 메가잭팟 슬롯머신부터 돌리기 시작했다.

잭팟 터지면 뉴욕에 음악 스튜디오를 만들고 제대로 록 밴드를 결성하자.”

기계에 투입하는 지폐는 꿈을 꾸는 비용이었다.

헛된 망상일지라도 내가 넣은 돈으로 기계가 작동한다는 것.

그 릴이 회전하는 동안 우리들의 꿈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싹을 틔워간다는 것.

그러나 슬롯머신은 꿈적도 하지 않고 연신 지폐를 흡입할 뿐이었다.

여러 도시를 돌며 몇날 며칠 동안 목청을 혹사하며 불렀던 방랑 듀오의 노래가 기계 속으로 시라지고 말았다.

블랙잭도 신통치 않았고, 룰렛과 주사위 크랩 게임도 꽝이었다.

하는 게임마다 깨지면서도 천둥은 언제든지 복구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장발장은 무조건 동조하고 응원했다.

5천 불을 잃고 1만 불이 남았을 때 천둥이 한판승부를 보자고 했다.

안되겠다. 그냥 한 번에 우리들의 운을 걸자. 괜찮지?”

만 불을 한 방에?”

, 먹으면 2만 불. 그 걸 다시 엎어서 베팅해 이기면 4만 불. 다시 한 번 더 8만 불. 세 깡 성공하면 카지노를 뜨자.”

!”

장발장은 언제나 무조건 천둥의 편이었다.

룰렛 테이블.

2004년 영국 출신 도박사 애슐리 레블은 전 재산 135천 달러를 챙겨 라스베이거스로 와서 룰렛 한 번에 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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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와 블랙, 색깔 선택에 따른 칼라 베팅.

반반 승부지만 싱글 제로 하나가 지뢰로 매설되어 있기에 37분의 18의 확률.

애슐리 레블은 레드에 올인했고 룰렛의 볼은 레드 7번에 들어가 더블 업에 성공했다.

천둥도 애슐리 레블의 올인 승부를 떠올리고 가장 베팅 규모가 큰 테이블을 골랐다.

친구야. 검은 색이 좋아, 빨간 색이 좋아?”

천둥이 장발장에게 물었다.

록 스피릿은 블랙이지.”

오케이, 블랙에 올인한다!”

천둥이 1만 불을 칩으로 교환해 블랙에 걸었다.

카지노에서 가장 큰 베팅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딜러도 긴장이 되는지 옷매무시를 고치고 볼을 쥐었다.

이유고 볼이 튕겨 회전판 가장자리를 빙빙 돌았다.

블랙과 레드는 서로 한 칸씩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 볼이 어디로 떨어져도 한 칸 차이였다.

원심력을 잃은 볼이 싱글 제로를 지나 비틀거리다 레드 5번으로 떨어지려 했다.

천둥과 장발장은 무심한데 구경꾼들이 비명을 질렀다.

오 마이 갓!”

볼이 5번의 칸막아를 퉁 넘어서 22번에 쑥 들어갔다.

당당한 블랙 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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